2025년 10월 연례만찬 책자에 들어간 이해경 (음악 50 졸업) 선배님과 이보영 (피아노 56 졸업) 선배님의 인터뷰 중 이해경 선배님의 회고 내용입니다.

이해경 ( 음악과 50 졸업 )
나는 이화여전 마지막 입학생이다. 1945년 이화여전 (3년 과정)에 입학했다가 중간에 이화여대(4년 과정)로 바뀌면서 졸업은 이화여대로 하게 되었다. 나보다 1년 선배인 복희 (김복희, 이대 음대 1회 졸업생) 언니와 나는 김자경(이화여전 음악과 1940 졸업*) 선생님의 제자로 있었는데 김자경 선생님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나는 전공을 피아노로 바꿨다.
해방 직후라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서울에 제대로 된 시설이 없었다. 당시 진관을 의학과에서 쓰고 있었고 선관, 미관을 기숙사로 쓰고 있었다. 기숙사에 물이 없어서 수세식 화장실을 쓸 수가 없었고,대신 진선미관 뒤에 커다랗게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어 놓고 썼다. 밤에 그 재래식 화장실을 써야 할 때면 진관을 지나가야 했는데 진관에서 도깨비가 나올까 봐 다 같이 그 앞을 뛰어서 지나갔다. 진선미관 앞 우물은 식수로 써야 해서 물통을 들고 신촌까지 가서 씻을 물을 가져와야 했다. 신촌에서 떠 온 물을 침대 밑에 두고 자면 다음 날 아침에 살얼음이 껴 있을 정도로 추웠다. 겨울이면 손이 얼고 동상이 생겨 진물이 나는 손으로 피아노를 쳤다. 따뜻한 물이 없으니 식사 당번 때 가마솥에 있는 숭늉 물을 가져다가 세수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식사는 주로 기숙사에서 했다. 당시 학교 주변에는 음식점이 별로 없었고 할아버지가 도넛 파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기숙사에서 1년동안 살다가 나와서 통학을 했다. 서대문구에서는 미군 트럭을 가지고 버스 운행을 시작했는데 당시 이화여대 학생들과 연희대학교 학생들이 같이 버스를 탔다. 길이 고르지 않아 버스 안에서 서로 많이 부딪혔다. 채플을 중강당에서 했었는데 아펜젤러 선생님이 채플 중에 사회를 보시다가 슬그머니 쓰러지셨다. 구급차가 와서 모셔갔는데 돌아가시게 됐다.
당시에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어려웠다. 진선미관에서 기숙사 사감으로 계시던 김옥길 선생님도 애를 많이 쓰셨다. 이화 재학 시절을 되돌아보면 힘들었다는 생각보다 철없이 즐겁게 지냈던 것 같다.

<우리반 졸업 음악회> 앞 줄에서 상하의 검은색 옷을 입으신 분이 김영의 학장님, 그 오른쪽이 김활란 선생님, 뒤에 계신 검은 정장 입은 남자분이 임원식 선생님이시다. 나는 왼쪽에서 세번째에 서 있다.
* 김자경 선생님의 이화여전 졸업 년도는 편집자가 추가한 것입니다. 이대학보 출처 : 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1439
